원불교 압구정교당(옛, 영동교당)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신사동을 연결하는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가
1969년 12월에 완공되고, 이어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가 1970년 7월에 준공을 했던 4년 뒤 1974년
11월에 당시 원불교 교화의 불모지인 서울 영동개발단지에 처음으로 영동교당이 개설되었다.
(이곳은 그당시 행정구역상으로 강남구가 아닌 성동구에 속해 있었다.)
압구정교당은 부산진교당의 창립주의 한 분이셨던 연타원 유선용 주무의 유족들이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기념사업으로 교당 설립을 염원하였던 바, 유선용 주무와 법연이 깊었던 향타원 박은국 법사님과 감타원 박혜순 법사 님이 유족이 전해준 110만원을 수령하였고, 이를 당시 원불교 서울사무소 소장이셨던 상산 박장식 법사님과 상의하여
남서울 개발단지인 영동지구를 교당설립의 적격지로 선정하였다.
중앙총부에서 원기 59(1974)년 7월 27일에 영동교당 설립인가를 받고 초대 교무로 감타원 박혜순 교무님이 발령되어 교당 개설을 준비해 오다가 이 금액으로 강남구 논현동에 25평의 가옥을 임차하고,
원남교당을 연원교당으로 하여 동년 11월 12일에 윤광준 장법운 부부, 김재원 고영환 부부, 안재신, 서항원 씨 등 6인의 교도가 첫 법회를 시작하였다.
이로부터 시작하여 3번에 걸쳐 다시 전세를 얻어 이전 봉불을 하였고, 원기62(1977)년 3월에 교도회장에 임기제, 부회장에 윤광준 및 주무 등의 임원이 정식으로 임명되었으며, 이때부터 월 3회의 법회가 매주 일요일 법회로 고정했다.
원기 63년 5월에 어린이회, 원기 64년 11월에 학생회, 원기 65년 3월에 청년회가 결성되었고, 원기 64년 3월에
교당 건축기성회가 발족하였으며, 이의 활약으로 원기 66(1981)년 4월에는 영동백화점 인근의 강남구 논현동 2단지 53호, 대지 80평 건평 40평의 2층 양옥을 5,020만원에 매입하여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하였다.
원기 68(1983)년 1월에 2대 긍타원 김광인 교무님이 부임하였으며, 원기 70년 1월 1일부터 새 교당 마련을 위한
1000일 기도가 시작되었고, 원기 72년 10월 1일에는 2,000일 기도를 위한 1,000일 기도가 다시 시작되었다.
교당 1층의 생활관과 2층에 마련된 법당이 교도의 증가로 비좁아 원기 70(1985)년 9월에 영동백화점 인근 대로변 대명빌딩 4층을 임차하여 법당으로 개수하고 의자로 좌석을 마련하여 이안 봉불을 하여 생활관과 법당을 분리
운영하였다.
교화의 활성화로 교도가 점차로 늘어나 다시 건축위원회를 구성하고, 모금 활동과 매듭 제작 판매 등으로 자금을
확보하는 활동을 줄기차게 펼쳐 원기 73(1988)년 3월에 강남구 신사동 648-27 소재 142평의 대지를 190,500,000원에 매입하였고, 여기에 동년 7월에 예랑건축사무소의 설계와 원불교 중앙총부 원광상사에 건축을 의뢰하여 교당 신축 기공을 하고 동년 11월에 215,100,000원의 건축비를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연건평 165평을 완공하였다.